music- poetry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 이해리

loren23 2007. 9. 28. 15:37

 

 

 

 

 

 

 

제 떠나왔던 도래지로 날아가려는 겨울 철새는 맹목적이다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나도 피하지 않는다
한 마리 고까도요새가 비행기와 충돌했다
새의 몸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엔진이
망가진 비행기는 허둥지둥 회항한다


조그만 새의 의지를 거대한 비행기가 꺾지 못하는 이유,
무어라 설명할까 조류학자들은
<인상받기>라 명명했지만
차가운 동체에 묻힌 한 점 혈흔의 가없음으로 나는
그 맹목이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라 유추해 본다


총을 쏘고 경음기 폭음기 다 동원해도 청, 청, 청
푸른 하늘 들이받으며 날아오르던 새,
그렇지 그리움이란 것,
제 떠나왔던 물가의 물소리 바람소리 사무친 기억 같은 것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것,
지구의 반 바퀴나 되는 비행거리를 찬 날개 두 쪽과
가슴에 오므려 붙인
가느다란 두 발이 전부인 행장(行裝)으로 날아가도 서럽지 않은 것,
그 망망한 외로움을 위해 한 목숨 분쇄되는 장애물도 두려워 않는 것,
펄럭펄럭 붉은 석양이 적시는 흰 가슴 날개로 제 몸 매질하여
구 만리 장천을 후회 없이 날아가는 것,
그리움도 그쯤은 되어야 지상의 계절을 번갈을 수 있지, 한 세상 사랑해서 건너왔다 할 수 있지.

***
철새들은 한 곳에서 받은 인상을 잊지 못해 그 인상 받은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비행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