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poetry

인연설(因緣說) - 문덕수

loren23 2016. 5. 13. 19:10

















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 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입술이며 이마를 한없이 부비고 문지르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 내고,

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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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나고(生) 죽고(滅)의 순환이다. 그 과정에 인연(因緣)을 맺는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소멸이고 불교를 믿는 사람은 윤회(輪廻)이며 기독교인에겐 부활(復活)이겠다.
인연설(因緣說)은 불교에서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 의한 결과이며, 인(因)은 그 자체가 결과의 근본적 요인이며, 연(緣)은 인(因)이 어떤 결과가 되도록 하는 여건·관계, 환경, 노력 등의 원조적 요인이다.

시에서 말하는 것도 이런 인연(因緣)의 한 모습이다. 꽃나무는 나서(生) 모든 것들과 연(緣)을 맺고 시들어 죽는다(滅).
그 꽃나무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도 죽어(滅) 나비가 되어 꽃나무를 찾아 날아간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연(因緣)을 맺으며 나고(生) 사라지는(滅) 것, 그것이 인연(因緣)이다.
이리 펼쳐 놓으니 인연(因緣), 거참 어렵다. 스치는 인(因)에도 무수한 연(緣)이 만들어 놓은 결과라 생각하면 맞으려나?
당신과 나의 인연(因緣)이 그런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반성한다. 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