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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인간이 아니다.
그럼 남자는 인간인가.
반 인간.
반 쪼가리들.
그들은 종류가 다른 되다만 인간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빠는?
머릿속이 온통 여자 생각보다 나무 생각으로 그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 일이다.
여자 없는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사나.
여자 생각 안 하고 몇 초나 지낼 수 있을까.
빌어먹고 붙어먹을 암수딴년놈들.
그날 네 눈은 말하고 있었다.
‘그 무엇도 아닌 너하고 지금 당장 성행위를 하고 싶단 말이야’
네 눈썹 밑에서 너는 그렇게 조르고 있었다.
그렇게 네 몸은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챈 건 아주 훗날의 일.
나를 원하는 너의 시선을 헤아리지 못하자
네 시선은 거친 호흡과 심장을 동원해 네 얼굴을 괴롭혔다.
그걸 알아챈 건 아주 뒷날의 일.
처음 본 그 여자의 성기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서러움
같기도 하고 그게 뭔데 그거 때문에 일생을 도리질 칠까 싶어
여러 날 이리 살피고 저리 뜯어보기도 하지만
그 심장과 허파의 곡절 어찌 헤아릴까
처음 본 그 여자의 날개는 뿔 달린 해일 같기도 하고
이집트 벽화 속 수렵하는 남자의 측면 머릿결 같기도 하다
처음 본 그 여자의 젖가슴은 마음의 평화 같기도 하고
가도 가도 아랫도리를 벗어날 길 없는 생 같기도 하다
처음 본 그 여자의 아가리는 변심과 질투가 들끓는 공중정원
같기도 하고 식욕과 성욕 위에 세워진 두려움 같기도 하다
아아, 어쨌거나 그 여자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여자고 ―「치미」중에서
미美를 만나 행복했다.
어느 정도로 행복했냐면 내 음경이 그녀의 질로 들어가자
그녀는 거기로 내걸 조였다.
천하를 얻은 느낌이었다.
천하가 거기에 있었다.
불을 껐다.
제발 불 좀 끄고 들어와요.
세상에는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살 섞기를 원하는 여자와
그런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두 종류, 그 밖의 종류의 여자들이 있다.
세상에는 젖이 퉁퉁 불은 젖통을 빠는 갓난애가 있고 나이 먹은 갓난애가 있다.
그 여자는 일깨워주었다.
천하를 주무르는 놈들도 자기 배꼽 밑에서 까불다 퇴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헐떡임으로 알게 해주었다.
배꼽 밑에서 죽어버리는 것들이…
배꼽 밑에서 놀다 자빠지는 것들이…
고작 배꼽 밑에서…
잠자리를 하고 나면 깔끔함, 후련함, 상쾌함, 통쾌함 따위의 감정보다는 실망감, 허망함, 찝찝함, 섭섭함과 더불어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게 밀려왔다. 잠자리 하기 전의 거대 욕망은 거대 허망으로 바뀌기 일쑤였다. 어떨 땐 기분이 더러웠다. 발정기도 따로 없이 이 짓거리를 평생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여자 남자라는 동물도 참으로 지리멸렬한 동물이다.
나는 그 밤 과연 사랑했는가
불어터져 눌어붙을 듯한 고요 속에
완전히 감은 너의 두 눈을
아니, 눈꺼풀만 오지게 감은 너의 두 눈을
나는 그 밤 과연 사랑했는가
참 그 밤 야릇하기도 하지
밑 벌릴 것같이 입 벌린 계집의 내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계산으로 그득해
나는 그 밤 과연 사랑했는가
그 계집의 밑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게 이 나이까지 그렇게 궁금했는가
그 밤, 단지 밑을 사랑하기 위해
심장은 그렇게 두근거렸는가
그 밤, 단지 밑을 파기 위해 흰 피는
머리카락 끝까지 꼭두새벽 그렇게 달려갔는가 ―「밑」전문
때때로 비가 왔고, 저녁이 왔다
갑자기 눈이 왔고, 아침이 왔다
키스가 섹스보다 더 황홀했던 밤,
이제 그 머나먼 밤은 가고 없다
철철 끓는 피 쩔쩔매며 배회하던 밤,
내 이마 적시던 그 진눈깨비 밤은 가고 없다
아직도 마음은 밑천 없이 껑충 물구나무서지만
이제 어디 가서 그 암내 그 철 지난 입술을 구하랴 ―「입술」전문
엄마.
어머니.
그녀.
화사한 봄날의 배추흰나비 같은 그녀가
집을 살림하던 그녀가
대개의 한국 남자들에게 신과 같은 어머니가
실상은 식모 수준이었다.
하늘같은 어머니가 어디 있나.
하늘로 갔거나 땅에 묻혔거나
지상에 가까스로 걸려 있다.
계집들.
허영녀들.
가식녀들.
사이에 유두가 있다.
굴욕과 모욕과 치욕과 수모와 모멸을 견디며
밥 버는 불굴의 여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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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첫째 아들이 부려먹었다
둘째 아들이 부려먹었다
첫째 며느리가 부려먹었다
둘째 며느리가 부려먹었다
첫째 손자가 부려먹었다
둘째 손녀가 부려먹었다
밥 번다는 이유로
평생 싼값에 부려먹었다
회초리같이 가느다란 사람,
암에 걸려 수술대 위에 걸려 있다 ―「어머니」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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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 1989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견자』『한 남자』외. 음: Rogier Van Gaal / Lo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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