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韓紙)에 시(詩)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 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 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와유(臥遊)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기는것을 이르는 말 안현미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과기대를 졸업했다. 2001년 문학동네신인상에 「곰곰」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불편’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수더분하게 생긴 낯익은 얼굴, 안현미 시인을 처음 만 난게 6~7년 전쯤 연희창작촌이라고 기억하는데 그녀는 그 이전에 인사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어쩌겠는가, 나의 기억력이 거기까지인 걸 여튼 그녀의 시는 역동적으로 산란하는 연어를, 꿈틀거리는 욕망 을,그리고 울컥하는 불편을 두루 건네준다. 그런 그녀가 정색을 하고 전통적 여인의 퍼소나를 쓰고 정한(情恨)을 이야기한다. 옛사람이되어 한지에 시를 쓴다면 오늘 밤 내리는 정갈한 가을비를 받아다 한 해를 묵히겠다고, 그리고 이듬해 가을 국화가 황홀하게 피는밤, 그빗물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겠다고 한 다. 이 여인, 욕심이 보통이 아니다. 현재의 빗물을 받아 이듬해 국화 향 가득한 밤을 기다리고, 해를 묵힌 물로 곱게 먹을 갈아 다시 훗날 의 그대에게 보낼 연서를 쓰겠다니,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 비는 지난해 다녀갔으니' 훗날의 그대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의 내 력에 어찌 취하지 않겠는가. 정한의 팜므 안현미, 아무리 가린다 해도 그일렁이는 에너지를 어떻게 감출 수 있겠는가. 곽효환의 시가 있는 아침에서,.. 찬 가을비가 내리는 저물어가는 저녁이다. 따스하게 난로를 켜놓고 가을비를 내다보고 있다. 물든 단풍잎들을 떨구고 있는 나뭇가지는 옛 韓紙에 긋는 애틋한 筆劃(필획)처럼 정갈하고 多情히 저녁 하늘에 번져간다. 이 순간을 같이하고 싶은 知音이 있으나 지금 여기 없다. 菊花에 가을비 스치듯 안타까울 뿐 그는 없다. 그 그리움은 버릴 수 없는 것이어서 내년 이맘때가 되어도 여전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내년의 내 맘을 들여다본다. '菊花는 가을비를 이해하고(놓치고가 아니라!)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여전히 내년 가을비에도 그리울 테지만, '지난해 다녀갔다'고… 묻어놓은 '앙탈'이 이 詩의 울림이고 웃음이고 회한이다. 朝鮮 女流의 옷고름이 얼핏 스친다. 장석남 · 詩人 · 한양여대 교수 안현미 시인은 사물을 좀 삐딱하게 보는 눈을 가졌다. 그녀의 시간의 흐름은 직선을 이루게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화하는 시간도 아니다. 실존의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의 직선은 시간들은 ‘어제는 겨울’이고 ‘오늘은 여름’이며 ‘낮에는 가을’이고 ‘밤에는 봄’ 이다. 이처럼 그녀의 시간이 부러져 내리는 것은 그녀가 세상을 뻬딱하게 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시적 화자는 지금 거실의 쇼파나 안방에 누워 옛사람이 쓴 한시를 감상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와유(臥遊)라는 시제가 그걸 암시한다. 이 시에서도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다. 그녀는 이미 과거의 여자이면서 연시를 받게 될 남자는 미래의 남자인 것이다. 국화는 그녀의 다른 이름이며 가을비는 연서를 받게 될 사람일 것이지만 가을비인 그 사람은 이미 지난해에 다녀간 과거의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연서를 받은 그가 홀로 마시는 국화술은 슬픔의 술이 아닐 수 없다. 아련한 통증으로 오는 시편이며 안현미의 시편 중에서 봉건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유일한 시편이기도 하다. 음: Flying To The Rainbow - Stefan Pinte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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