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라고 시인 김선우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평생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김선우의 글로 그 문장을 보니 새삼스럽다.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 둘은 비교가 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꽃은 꽃이어서 꽃이고 사람은 사람이어서 그냥 사람일 뿐이다. 둘의 문장은 다르고 둘의 이야기도 다르다. 그런데 무엇이 그들을 자꾸 엮어서 말하게 만드나. 김선우의 시를 읽기 전까지 그 꽃을 알지 못했었다. 김선우가 시에서 그랬다. 얼레지의 꽃말이 바람난 여인이라고. 바람난 여인은 스스로 물을 주고, 스스로 피어나는 법이다.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스스로의 몸에 얼룩을 만들고, 그 얼룩을 뜨겁게 피워내고, 그 격정으로 바람을 만든다. 나는 김선우의 관능이 좋다. 시침을 떼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는 김선우의 몸과 관능은 머뭇거림이 없어 도도하고 아름답다. 몸과 몸이 만날 때, 누가 머뭇거리나. 뜨거운 순간에 누가 소리를 가만히 삼키나. 김선우의 시가 몸의 관능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김선우의 시는 그녀가 원하는 곳에서마다 피어난다. 그곳은 남해금산이기도 하고, 옛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는 방안이기도 하고, 제주 강정마을이기도 하다. 그 어디에서든 그녀는 피어난다. 그 꽃은, 활짝 벌리라고 있는 꽃이다. 소리 없이도 악악 소리지르는 꽃이다. 그래서 그 꽃그늘이 어지럽다. 그러니 그 꽃그늘에 쓰러져 홀로 참숯처럼 뜨거워질 밖에. 이제 보니 알겠다. 왜 자꾸 꽃과 사람을 연결시켜 말하는지. 사람이든 꽃이든 스스로 피어나야하기 때문이다. 벌나비 도움 없이, 비 햇살 도움 없어도, 피어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피어나지 못하면 쪼그라들고, 쪼그라들고 시들면 죽음이니... 어찌하겠는가, 피어나야할 밖에. (소설가 - 김인숙). 촉촉하게 젖은 꽃잎을 연상시키는 김선우의 시는 여린 듯 강렬하고 수줍은 듯 관능적이다. 그녀의 시에서 저절로 배어나오는 물기란, 젊음의 소산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둡고 따뜻한 자궁 속에 출렁거리고 있는 양수에 가깝다. 그녀의 여성성이 발산하는 새로운 빛은 이 양수의 풍요로움에서 비롯된다. 그 속에 숨쉬고 있는 너무도 많은 누이와 어머니와 노파들은 각기 태아이면서 동시에 산모이고 산파이기도 하다. 그 둥근 생명들을 산란하기 위해 그녀는 지금 운주(雲住)에 누워 있다. 곧 물의 살을 찢고 눈부신 가시연꽃이 필 것이다.’ 희귀하게도 식물 중에서 1속1종인 가시연꽃, 크게는 연꽃잎이 2m가 넘기도 한다. 그 가시연꽃은 부처가 이 세상에 와 잠시 앉았다 간 자리처럼 넓고 컸다. 각성한 부처의 마음자리는 그 크기와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것이지만 거대한 가시연꽃잎을 보면, 그 자리에서 피어 오른 연꽃을 보면 인간의 각성이란 저런 것이지 싶을 때가 있다. 연꽃잎 중앙으로 피어오른 가시연꽃은 관능적이면서도 초월적이다. 김선우는 저런 시를 쓰는구나 싶다. 나는 아주 잠시 그 연꽃잎에 맺히는 물방울이 됐다가 떨어졌다. 김선우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가시연꽃을 찾아 운주로 떠난 모양이다. 가시연꽃을 찾아 단 한번도 가시연꽃 피운 적 없는 운주사에 가네 참혹한 얼굴로 나를 맞는 불두, 오늘 나는 스물아홉살 이십사만칠천여 시간이 나를 통과해갔지만 나의 시간은 늙은 별에 닿지 못하고 내 마음은 무르팍을 향해 종종 사기를 치네 엎어져도 무르팍이 깨지지 않는 무서운 날들이 만가도 없이 흘러가네 운주에 올라, 오를수록 깊어지는 골짝, 꿈꾸는 와불을 보네 오는 나는 열아홉살 잘못 울린 닭울음에 서둘러 승천해버린, 석공의 정과 망치 티끌로 흩어졌네 거기 일어나 앉지 못하고 와불로 누운 남녀가 있어 출렁, 남도땅에 동해 봄바다 물밀려오네 참 따뜻하구나, 물속에 잠겨 곧 피가 돌겠구나 걷지 못하는 부처님 귀에 대고 속삭였네 ‘雲住에 눕다’ 중에서 - (시인 - 원재훈) 음:Eclipse of the moon - Brian Cr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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