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문을 열면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립고 아쉬운 풍경들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그 옛날 흑백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어린 눈망울처럼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밤마다 동네 아낙들이 인기연속극 「여로」를 보러 마실을 나가는 것처럼 나는 내 속의 푸른 극장으로 매일 출근을 한다. 그 속에는 간절한 눈빛의 왜가리가 있고 사람들의 손때로 환하게 닳아 오른 공중화장실의 문이 있다(그 문을 여닫을 때마다 나는 달무리를 떠올렸다. 냄새는 생각나지 않는다). 또 기왓장을 교체하던 아버지의 손에 잡힌 축 늘어진 먹구렁이의 눈동자가 있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는 기차가 있는 마을이 있고, 눈 내리는 겨울 하늘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는 술 취한 사내가 있다.
기차에겐 후진이란 게 없다, 그걸 알 때까지
아이들은 습관처럼 손을 흔들었지만
되돌아오는 건 늘 매캐한 기름 냄새뿐이었다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질주하는 풍경엔 관심조차 없었으므로,
그 어떤 답례나 화답은 없었다
비릿한 쇳내와 주인 모를 지린내를 맡으면서도
기찻길 놀이터엔 언제나 때 묻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누가 누구랑 ××했다는 붉고 삐뚤삐뚤한 글씨가 써진 철교 위에서는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재빨리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아이들이
달려오는 기차와 정면으로 마주치곤 했다
그것은 어른이 되기 위한 이곳 기찻길 동네만의 통과의례,
몇 해 전 한 사내가 철로를 안고 자다 객귀가 되었고
占집 봉식이는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기차의 제물이 되고 말았지만
강물은 언제나 그런 영혼들을 무심히 받아먹곤 했다
객기와 담력을 구별하기엔
기차는 너무 빨랐으며 강물은 너무도 태연히 흘렀다
철교 아래서 듣는 기차소리가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내 치마폭도 조금씩 요동을 쳤지만
제풀에 꺾여버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거대한 바퀴가 바퀴를 끌고 가는
그 끝없는 갈증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바퀴는 무럭무럭 자란다」 전문
이렇게 음소거된 대상들은 내 기억과 상상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다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 이미지가 된다. 어떤 대상들은 왜곡을 거치기도 했으며, 또 다른 대상들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지만 아직 그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시점에 따라 그 대상들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사물의 틈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할 때 대상의 본질까지 엿볼 수 있듯이 모든 사물들은 관계를 지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킨다. 그것을 시로 나타낼 때 대상의 의미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다. 혼용된 여러 이미지들은 내 기억 속 푸른 극장 속에서 숙성, 발효되거나 설익은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한다. 적당한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그때가 왔을 때 정확하게 캐치할 줄 아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만약 시기를 놓치면 또다시 대상은 수면 아래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시의 깊이는 얼마나 추상적이고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밀도 높은 긴장감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 했다.
`뭇별이 총총`은 데뷔 후 12년 만에 출간된 나의 첫 시집이다. 나는 푸른 극장의 단 한 명뿐인 관객이면서 게으른 소유주였다. 때 묻고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똑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존재가 바로 나인 것이다. 나의 푸른 극장은 요즘 할리우드 액션영화처럼 화면 전환이 빠르지는 않지만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처럼 웃음과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이다. 그 속에서 나는 무수한 나와 맨몸으로 마주선다. 경험이 시의 상상을 자극하는 건지, 상상이 경험 속 기억을 불러내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경우에라도 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다만 그 상상과 기억 사이를 오가며 푸른 극장의 문을 드나들 뿐이다. 하지만 푸르고 깊은 화면이 내게 악몽을 보여줄 때면 나는 재빨리 문을 닫아버린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핑계를 중얼거리지만 언젠가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푸른 극장도 나도 알고 있다.
푸른 극장은 나를 벗어난 존재인 동시에 또한 나 자신이다. 제 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에는 다시 나로 돌아와 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기차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을 참던 초등학교 시절처럼 나는 다시 나의 용기를 시험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시선을 돌려 피해보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깊고 푸른 심해의 공간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시집의 제목처럼 숱한 뭇별이 총총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안다. 푸른 극장은 나에게 죽음의 공간이며 또한 생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집을 출간하자 십여 년만의 첫 시집인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와 똑같은 질문을 나의 푸른 극장에게 한다. 아직 할 말이 남은, 미심쩍은, 흔들리는 빛들로 가득 찬 푸른 극장에서 나는 앞으로 부지런한 소유주가 될 것임을 다짐해본다. 나의 긴 여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배영옥 -대구 출생.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뭇별이 총총』.
배경음악 : Most Beautiful Music Ever: We Rul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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