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poetry

박연준 시집 -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中

loren23 2016. 6. 19. 17:13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 쳐요
더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 몸에 흘러와 머물지
모르죠, 해바라기들이 모가지를 꺾는 가을도
궁금해하며 몇번은 내 안부를 묻겠죠


그러나 이제 나는 멍든 새벽길, 휘어진 계단에서
늙은 신문배달원과 마주쳐도
울지 않아요

음: Dark Sanctuary - Cri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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