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poetry

지워진 것들은 빗속에 서 있고- 남정

loren23 2016. 6. 20. 20:23













후박 나뭇잎을 타고 내리는 비
굵은 빗방울이 지우개인양 허공을 지운다
꽃과 그늘을 지우고 처마 끝에 흐리게 닿아있는 먼길을 지운다
비가 오면 나는 나를 지우고 싶어진다

내 눈을 지우고 빨간 립스틱을 지우고 생각을 지우고 지우고…
그러나 지워진 것들은 언제나 빗속에 서 있다
지상에 내려선 비는 잔디를 지우고 길을 지우고 떨어지는 제 몸을 받아 지운다

지우기 위해 비는내리고 지워지기 위해 생각은 내 안에서 웃자란다

여름 날 빗속에 서 있으면 지워진 네가 추억처럼 푸르게 되살아나고
나는 나를 지우고 싶어 비에 젖는다

지워진 것들은 언제나 빗속에 서있다


음: Mandragora Scream- Child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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