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 가을, 지리산, 인연에 대하여 한 말씀,
가을, 지리산, 인연에 대하여 한 말씀, 저기 저 숲을 타고 스며드는 갓 구운 햇살을 고요히 바라보는 것 노을처럼 번져오는 구름바다에 몸을 싣고 옷소매를 날개 펼쳐 기엄둥실 노 저어 가보는 것 흰 구절초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김치 김치 사진 찍고 있는 것 그리하여 물봉숭아 꽃씨가 간지럼밥을 끝내 참지 못하고 까르르르 세상을 향해 웃음보를 터뜨리는 것 바람은 춤추고 우주는 반짝인다 지금 여기 당신과 나 마주 앉아 눈동자에 눈부처를 새기는 것 비로소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연은 그런 것이다 나무들이 초록의 몸속에서 붉고 노란 물레의 실을 이윽고 뽑아내는 것 뚜벅뚜벅 그 잎새들 내 안에 들어와 꾹꾹 손도장을 눌러주는 것이다 아니다 다 쓸데없는 말이다 한마디로 인연이란 만나는 일이다 기쁨과 고통,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