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poetry

치마 / 문정희

loren23 2016. 5. 25. 18:02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남과 여, 그다사다난함의 배후에는 오로지 종족 번식 본능 외에는 없다. 몸은 그저 몸일 뿐이고, 거기에 어떤 신비적 색채를 더한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것은 리비도의 발현일 뿐이다.사랑이나 예술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부대끼는 가련한 짐승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비가 사라진 세상은 쓸쓸하고삭막하다. 사막길에서 쓰러지지 않는 것은 저 멀리 신기루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환상인 줄 알면서도지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랑의 꽃들이 피어난다. 불멸의 신전을 향하여, 그 신전을 지키는 사제를 향하여눈물겹게 나아가는 저 순례객들의 행진을 보라. 그 본능적인무한의 끌림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만물을 존재하게 한다.

문정희 시인은 이런 류의 시를 통해서 커튼에 가려진 인간살이의 단면을 드러내 준다.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무시하거나 외면하려 했던 것들이 조금은겸연쩍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시에 대하여 임보 시인이 재미있는 답시를 달았다. 서로를 긍정하는 남과 여의 궁합이 잘 맞는다. 그리고 두 시인 모두 똑 같이 종교적인 비유를 하고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신전, 성지, 참배, 경배.... 그러니 성(性)은 곧 성(聖)이 맞는가 보다.


문정희(文貞姬,, 1947~ 전남 보성)
동국대 국문과 학사/석사, 서울여대 문학박사. 동국대 고려대 교수 역임.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인 등단.
진명여고 재학시절에 펴 낸 첫시집 <꽃숨> 이후 많은 시집 및 수필집 발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국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 수상

임 보(본명 姜洪基, 1940~ 전남 순천)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 졸업. 성균관대 문학박사. 충북대 국문과 교수 역임.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인 등단.
1974년 첫시집 <임보의 시들> 이후 2011년 <눈부신 귀향> 등 14권의 시집 및 많은 동인지와 시론집 펴냄.
필명 임보(林步)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에서 따온 것이라 함.










팬티 / 임보 - 문정희의 '치마'를 읽다가 -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 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ㅡ,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치마 속에 우주가 담겨있다.
그 우주의 깊이를 알기위해 남자들은 그 주위를 서성이며 한껏 헤매지만
그 우주를 다 알 수는 없는 법.
치마가 벗겨졌을 때 그 우주의 주위에 조금 다가설 수 있을 뿐이다.

치마를 올릴 것인지? 바지를 내릴 것인지?
이것이 문제로다
그렇다
세상의 빨랫줄에서 바람에게 부대끼며 말라가는 것 또한
삼각 아니면 사각이다

삼각 속에는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이 있고
사각 속에는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가 있다고
문정희와 임보가 음풍농월 주거니 받거니
진검 승부를 펼친다

옳거니
방폐 없는 창이 어디 있고
창 없는 방폐가 무슨 소용이리

치마와 바지가 만나 밤은 뜨겁고 세상은 환한 것을,,,,,,,,,,,,,/








야간전투의 전설
(문성희,임보,랭보,청마,프로이드,예담비,이육사,영랑,만해 및 맥아더 등을 반죽한, 십인을 향한 오마쥬)

그 어느 신전의 전설이더뇨.
태초에 전사들은
치마를 뒤집어 깃발을 만들었다
그들의 시퍼런 검광이 곧추서고
탈진한 승리의 아우성으로 깃발을 꽂을 때면
메마른 성전에도 생명의 샘물이 솟아 넘쳤다.

깃발은
저 깊은 죽음의 심연을 향한
원초적 노스탤지어의 우회로. 전사들이 검에 매단 쌍방울에
맹세로 새긴 문신 두글자는
돌. 격.

아무리 굳게닫힌 성전일지라도
전사들의 핏발선 마스터키로
열리지 않는 성문이 없었으니 승리의 절정에서 그들이 전율할때
신전의 꼭대기에 걸린 치마들도 같이 떨며 펄럭이고,
샘물은 솟아올라
환희를 합창했다.

그렇지만
전사들은
절정의 허무를 미처 채우지못해
더 달콤한 샘물에 목말라
머언 우회로를 돌아, 돌아
다시는 귀환하지 못할
기나긴 원정을 떠나곤 했다.

다시 천고의 세월이 흐르고
새벽닭도 목이 쉬어갈 즈음
전투와 전투속에 지쳐가는 전사의 어깨 뒤로 슬며시
찬란한 슬픔의 봄이
꽃에 실려 돌아오고
기상나팔 소리가
곡마단 트럼펫 소리처럼 애닯을때
노병은,
이빠진 역전의 칼날을
피나도록 움켜잡고,
희미한 옛 영광을 쓰다듬는다.

영롱히 츰추던 검의 꽃술도
귀밑머리와 함께 색을 잃었구나
하늬바람에 나부끼던 치마들도
이제는 깃발이 되어 유혹하지 않는구나.
신전의 그친 샘물에
전사여 고인침을 뱉어라.
내걸린 치마들을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라.

이윽고 밤이
도둑처럼 걸어오면
노병은
녹슬은 훈장을 가슴에 묻은채
헤지고 빛바랜 깃발에 경배하며
마지막 야간전투를 향한
출정의 정념을 불태울때,
출진의 북소리는 오히려 잦아들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지 않으니,
밤하늘에 아련한
취침나팔 소리를 듣고서는
신전에 넘치던 샘물은
다시는 애써 솟지도 마라.

하지만,
노병은
죽지않고,
다만 목놓아 울다가 사라질뿐.
전설은 이렇게 다시 시작한다.


음 : Katy Gray / Hold Me T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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